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저 이버트 (문단 편집) == 일생 == 1942년 6월 11일에 전기수리공인 월터 해리 이버트와 경리 애너벨 사이에서 [[일리노이]] 주 어바나에서 태어났다. 소싯적 [[일리노이 대학교]]와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1967년부터 시카고 선타임스에서 영화 평론가와 영화 담당 기자로 일하며 1975년에 영화 평론가로는 최초로 [[퓰리처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고, 1975년부터 시카고 트리뷴 기자인 진 시스컬과 함께 방송에 진출하여 1999년 시스켈이 사망할 때까지 콤비로 활발히 활동했다. 1999년에 시스켈이 뇌종양으로 사망한 뒤 리처드 로퍼와 함께 활발히 활동하다 2002년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기 시작하여 2003년과 2006년에 두 차례 암이 재발하여 투병생활을 시작했고, 특히 2006년에 침샘암으로 1차 수술을 받을 당시 [[종아리뼈]]와 [[어깨]]의 일부 조직을 떼어 인공 턱뼈를 만들어 호전되나 싶었지만, 불행히도 경동맥이 끊어져 호흡 곤란으로 기관지가 절제되어 말을 못하게 되었다. 당시 아래턱을 제거한 상태라서 수술 후 얼굴이 많이 달라졌고. 아예 아래턱을 스카프로 가리고 나올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평론은 글을 쓰거나 기계의 도움[* 2009년에 스코틀랜드의 개인 [[TTS]] 제작업체 CereProc에 의뢰하여, 자신의 TV프로그램 및 DVD 코멘터리 등에 담긴 음성 데이터에서 추출한 '실제 자신의 목소리로 된' TTS 소스를 개발했다. 녹음된 음원을 사용한 최초의 경우라고 하며, 2010년 3월에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여 이것을 통해 대화를 나눴다! 게다가 이 과정을 통해 Ebert Test(TTS의 인공지능을 측정하는 그만의 척도. 아직 전문 테스터로 개발된 것이 아닌, 아이디어 수준의 개념이다. TED 영상에 보면 이 단어의 뜻이 나온다. 영문위키에도 등재되어 있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을 빌린 목소리를 통해 계속 하는 듯. 2011년 봄 [[TED]]에서 [[http://www.ted.com/talks/lang/en/roger_ebert_remaking_my_voice.html|연설을 하였다]]. 영화평론이나 관련경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수술 후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까지의 과정과 그를 통해 느낀 디지털 문명에 대한 통찰로만 채워진 내용이다. 크나큰 육체적 고통을 겪고도 낙천적인 자세로 저술과 소통활동을 계속하는 그의 모습이 감동을 준다. 2011년에 [[http://www.insideedition.com/images/stories/1101/1827.jpg|인공턱을 끼워 넣어 예전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근데 2012년 12월에 또 다시 엉덩이뼈에 금이 가서 입원하기도 했다. [[변호사]]인 아내와 춤을 추다가 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2013년 4월 4일, 7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사망 하루 전까지도 자신의 웹사이트 업데이트와 영화제를 비롯한 향후 계획에 대해 열정적인 글을 남겼다. 마지막 리뷰는 [[테렌스 맬릭]]의 《투 더 원더》. 어쩌면 후대는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스티븐 호킹]]이나 장도미니크 보비[*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엘르 지 편집장으로 일하다 전신마비가 온 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꺼풀을 깜빡이는 방법으로 책 《잠수종과 나비》를 썼다.]의 경우처럼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신체의 결점을 극복하고 지적 활동을 계속한 점을 꼽을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과 같은 예술, 인문분야는 그 특성상 한 사람의 업적에 대한 평가기준이 획일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그의 평론가로서의 위상에 대해서는 사실 개인의 입장에 따라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퓰리처나 [[칸 영화제]], 그랑프리 등의 수상은 스포츠 분야의 [[올림픽]] [[금메달]] 또는 세계 신기록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하지만 그와 학문적으로 반대편 입장에 선 사람이라도, 그가 노년기에 보여준 삶에 대한 열정에는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14년 그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http://oneringtrailers.com?m=100367|Life Itself]]》가 개봉하였다. 영화 각본가로도 활동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컬트 영화로 유명한 러스 메이어의 '인형의 골짜기를 넘어서(Beyond the Valley of the Dolls)'다. 이 작품 말고도 러스 메이어랑 친했는지 몇몇 영화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